책소개
미롱의 시는 비참하다. 시인이 그리는 퀘벡인의 육체와 시선과 영혼은 각기 경직되었거나 상실되었으며 병적인 고통에 빠져 있고 결국 그들의 모든 것은 “죽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퀘벡인의 혁명은 피를 겉으로 드러냄 없이 내면에 흐르는 “깨진 거울 사이의 네 붉은 피”로 상징된다. 자신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깨져 있다는 것, 그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그것은 본질이 쪼개지고 흩어진, 그 자신 밖에 있는 인간의 모습이며 그의 정신적 내출혈과 다름 아니다.
퀘벡 문학이 그토록 기다렸던 이 시집 ≪꿰맨 인간≫은 출간 이후 몇 차례 개작 과정을 거쳤지만 저자는 이를 끝까지 미완성의 시집으로 간주한다. 미완성이라는 의미는 새로운 시를 추가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항거와 슬픔의 시가 퀘벡의 치유되지 않는 상처처럼 아직도 생생한 언어의 고통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미롱은 1970년 이후 많은 시를 쓰지 못했다. 이것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자신의 시적 문체에 대한 집착이며, 삶의 변화 혹은 현실 개혁에 대한 그의 요구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셈이다.
미롱의 시는 슬프다. 그러나 시인의 고통은 아름다운 언어로 승화되었으며 그 슬픔 속에는 ‘내일’이 있다. “고달프고 비통한 현존”의 땅 퀘벡은 “태형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환히 트인 앞날 / 약속의 앞날”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조용한 혁명’의 결과이며, 시의 희망이다. 1970년 ≪꿰맨 인간≫의 출판과 함께 혁명은 문학적으로 완성되었다. 미롱의 시집은 결국 퀘벡 시문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조명했으며, 현재의 문단은 그 연결선상에서 시적 서정을 바탕으로 퀘벡의 정체성 확립을 지속하고 있다.
200자평
퀘벡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가스통 미롱의 <꿰맨 인간>은 “흩어진 정체성의 조각들을 꿰매고 이어서, 상처는 있으나 본래 모습을 되찾은 인간”을 뜻한다. 퀘벡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그의 시편들에서 우러나는 퀘벡인들의 슬픔은 우리에게도 공감을 일으킨다. 생생한 언어의 고통을 담고 있는 미롱의 미완성 시집을 한국어로 처음 출간한다.
지은이
가스통 미롱은 1928년 1월 8일 생트아가트데몽에서 태어났다. 1947년에 몬트리올에 정착해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사회과학 강의를 듣고 여러 문인을 만나게 되면서 퀘벡의 현실 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 1953년에 출간된 그의 첫 시집 ≪두 가지 피≫는 시에 대한 강한 열정과 시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 퀘벡이라는 피지배적 공간 속의 자아를 향한 각성의 외침이었다. ≪두 가지 피≫ 이후 ‘조용한 혁명’ 시기 직전과 그 기간에 생산해 낸 그의 시들을 <사랑을 향한 전진>, <라바테슈>, <꺼져 가는 삶>과 같은 몇 단계의 시적 과정으로 구분해 각기 명칭을 부여했다. 1953년의 시집과 이런 여러 시적 과정의 작품들을 모아 1970년에 ≪꿰맨 인간(L’homme rapaille)≫을 출간했다. 미롱은 ‘퀘벡성’이라는 퀘벡이 추구하고 간직해야 할 정신적 가치를 한 권의 시집에 남기고 1996년 12월 14일, 68세의 나이로 “고달프고 비통한 현존”이었던 땅 퀘벡을 영원히 떠났다.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장의 영광을 받았다.
옮긴이
한대균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투르의 프랑수아 라블레 대학교에서 랭보 작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청주대학교 불어불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위고, 보들레르, 랭보, 본푸아 등 프랑스 시인에 대한 강의 및 연구,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시 번역본으로 위고 시 선집 ≪어느 영혼의 기억들≫, 랭보의 운문 시집 ≪나의 방랑≫, 본푸아의 대표 시집 ≪빛 없이 있던 것≫을 출판했으며, 이들의 시학에 관한 대표적인 글로 <위고의 ≪관조 시집≫ 연구>, <예술의 효용성과 자율성: 보들레르와 고티에의 미학>, <랭보와 파리 코뮌: 1871년 5월의 시 분석>, <이브 본푸아 연구: 단순성과 주현의 시학>, <‘진보’냐 ‘예술’이냐: 1859년도의 위고와 보들레르> 등이 있으며, 번역론으로는 <번역시의 운명>, <운문 번역의 문제들: 랭보를 중심으로>, <시 번역의 몇 가지 쟁점들: 이브 본푸아의 번역론을 중심으로>, <번역가의 고통: 서정시와 서사시의 경계에서> 등이 있다. 한국 시의 불역에도 관심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은의 첫 시집 ≪피안감성≫을 포함해 1960년대 초기 시집 몇 권에서 발췌한 ≪돌배나무 밑에서≫와 조정권의 ≪산정묘지≫ 불역본을 프랑스에서, 구상과 김춘수부터 기형도와 송찬호에 이르는 ≪한국 현대 시인 12인의 시 선집≫을 캐나다에서 출간했다. ≪산정묘지≫ 불역으로 2001년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수여하는 제5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한국 시에 관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연구 영역을 프랑스어권으로 확장해 2006년에 한국퀘벡학회를 창설,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문학의 연구 및 국내 소개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의 학술 대회를 통해 캐나다 퀘벡, 일본, 중국의 저명한 학자를 초빙해 강연을 듣고 발표와 토론에 참가했다. 2008년에는 캐나다 퀘벡 시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는 학회에 참가해 <한국에서의 퀘벡학 연구 현황>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프랑스어권 학회인 CIEF 총회에 여러 차례 참가했는데, 2010년 여름 캐나다 퀘벡의 몬트리올 총회에서는 <안 에베르의 ≪왕들의 무덤≫에 대한 한국어 번역>이란 주제로, 2013년 여름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번역의 실패: ≪꿰맨 인간≫의 ‘시퀀스’의 경우>란 주제로 발표했다. 퀘벡 문학에 관한 연구로는 <가스통 미롱과 탈식민주의>, <퀘벡의 저널리즘과 문학> 등 다수가 있으며, 가스통 미롱의 유일한 시집 번역본 ≪꿰맨 인간≫을 출간했다.
차례
권두시
영향
1. 두 가지 피
세월의 바다
내 아름다운 사랑
폭풍의 저녁
앙상한 육신
부술 수 없는 진실
노래
추가 달린 작은 연속
수평선의 성가
화관이여 오, 꽃이여
세상과 사랑을 되찾기 위해
너에게 쓰노라
단아하고 애처로운 나의 여인
2. 이곳을 통해 어떤 곳으로
각자
자기방어
물잔 혹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축소
잡다한 소식
출구 없는 이 세상
선언
우리가 가는 길
사랑을 향한 전진
어린 소녀
눈물보다 어여쁜
사랑을 향한 전진
이별의 시 1
이별의 시 2
너와 함께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종말
라바테슈
저주받은 커넉
세캉스
꺼져 가는 삶
꺼져 가는 인간
슬픔의 유산
나의 본국 송환을 위해
겨울의 세기들
그리고 사랑마저 병들었다
잉걸불과 부식토
정신착란적인 자기 상실에 대한 독백
완전한 고독의 세월들
못대가리
광장에서
아메리카의 친구
10월
사랑과 투사
“매일 나는 그대의 육신 속으로…”
“내가 동지들 다음에…”
“나에게 말해 다오 그대에 대해…”
“추위로 몸을 떠는…”
“바다가 이곳에서…”
동지
세월 속에서의 경의
유예된 사랑의 시편들
그 홀로 그녀 홀로
떠도는 사랑
미로를 빠져나오며
그 이후에
시 속에서 전진하다
인간의 가난
파리
시학
마을에 멈춰서
작은 까마귀
어둠의 어둠
네 번째 사랑
상투적인 말
타고난 가정
퀘벡 인류
수많은 한 문장으로
지은이 연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리는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삼각주 같은 이마로
“굿바이, 안녕!”
과거를 짊어지고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모든 예속들을 증오하는 데 지친 우리는
희망의 사나운 짐승이 되어 있을 것이다